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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생각

더 악랄하게 맞서야 할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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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이 선하냐, 악하냐에 대한 논쟁은 결론이 없어 보이는데요, 저는 성악설을 지지합니다. 인간은 동물입니다. 동물이 자연세계에서 본능적으로 가장 먼저 추구하는 건 생존입니다. 생존은 기본적으로 내가 남보다 뛰어나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남보다 뛰어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세계가 자연의 상황입니다. 조화와 아름다움의 이면에 가려져 있는 경쟁과 살육, 더 우월해지기 위한 진화와 돌연변이가 끊임없이 펼쳐지는 곳이 자연입니다.

하이에나 새끼의 경우, 가장 먼저 태어난 녀석이 동생들을 살해함으로써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정말 비정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그런 감정이 있을까요? 없을 겁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데, 인간도 다를 바 없습니다. 남보다 더 잘 살고 싶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고 등의 생존을 위한 본능과 욕심 때문에 의식하지 못한 채, 의식을 하면서도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줄을 잘 서 있네요. 전철에서는 열차가 도착하기 전까지는 줄을 잘 서 있다가 열차 문이 열리면 엉망이 되더군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욕심....


물론 법과 제도, 교육 등을 통해 본능에 따른 악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순화시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한 본성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교육 등에 의해 잠정적으로 억제된 악의 본능은 생존과 이해관계가 얽힌 딜레마 상황에서 결국 본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접하는 온갖 사건사고에 관한 뉴스가 다 이런 것들입니다.

어느 한 인간의 진면목을 알려면, 이해관계가 얽힌 상황에서 어찌 행동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평소 호인이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 십중팔구는 호인에서 악인으로 변할 가능성이 큽니다. 당장 내가 손해 보고, 죽게 생겼는데 양보하고 협력할 사람이 많을까요?

그렇게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본성이 선해서가 아니라 교육화된 양심의 가책이 악한 본성을 억제했거나, 처벌 등을 두려워하는 소심한 마음 때문일 것입니다. 순박한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노출된 경우가 적었기에 악이 발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며, 이들도 상황에 따라 돌변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시골 인심이 더 무섭다 등의 이야기가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결국 인간의 본성은 악하나 억제되고 있을 뿐이며,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이슈가 될 수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야말로 홉스(Thomas Hobbes)가 이야기하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함부로 믿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비정하고 얍삽하게, 남을 짓밟으며 인정사정없이 자기의 생존과 이익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순간 방심하면 코 베어 가는 세상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남들보다 더 악랄해질 것이냐, 적당히 줄타기를 하며 그냥 존재할 것이냐, 안분지족 하며 피해 다닐 것이냐....

제 경험상 피해 다니려면 확실히 피해야 합니다. 최악을 피해도 차악을 만나는 경우가 많아 보입니다. 어차피 같은 세상에 있으니까요. 그래서 피하려면 현재와는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세상으로 떠나야 합니다.

그럴 자신이 없으면, 현실과 강하게 맞서야 합니다. "중간만 가자"는 생각은 위험합니다. 특히,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에서는 중간만 가도록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생산성, 나이 등을 고려하며 늘 더 생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찾기 때문입니다. 인간이나 조직이나 마찬가지인 거죠...먹고 사는 게 참 고달픈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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