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공군사관학교에서 군 복무를 할 때, 저는 매주 월요일마다 서울에서 청주까지 출근을 했습니다. "지각은 절대 안된다"는 생각에 새벽 일찍 일어났고, 늦었다 싶으면 조바심에 속도를 내기도 했었습니다.
제 동료 중 한 명도 저처럼 서울과 청주를 왔다갔다 했었는데요, 그는 아주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으며 종교를 떠나 심성이 매우 착한 친구였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월요일 출근시간을 맞추지 못하고 지각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FM 대로 하는 성격이었고, 남에게는 물론 저 자신에게도 엄격하려고 노력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지각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참다 못해 하루는 짜증을 내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야, 장교가 지각을 하는 게 말이 되냐?"
너무나 당연한 지적에 그는 꼼짝을 못할 줄 알았습니다. 반성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친구야, 잘못을 지적하기에 앞서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려 하면 안될까?"
참 황당한 말이었습니다. 뭘 이해하라는 건지...늦는 이유가 있으면 그 이유를 감안해서 더 일찍 일어난다든지 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다 하고 말하는 건가? 여하튼 장교가 지각하는 건 말이 안되는 모습이었습니다. 결국 언쟁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친한 사이여서 아무런 앙금 없이 그렇게 30년 가까이가 흘렀습니다.
그 친구는 왜 자신에 대한 반성보다는 저의 변화를 먼저 주문했을까요? 내용상으로는 제 지적이 맞는데, 어투 등 지적하는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일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전달하는 사람의 태도(Tone and Manner)에 따라 그 결과가 천양지차(天壤之差)인데, 당시 저의 태도가 그 친구를 변화시키는 데 적절치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개인으로서, 조직의 리더로서 여러 사람을 겪어 본 지금,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인간은 누구든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일단 짜증을 낸다. 또한 아무리 훌륭한 조언이라도 받아 들이지 않는/못하는 사람들이 있고, 이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당시에나 최근까지도 저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었습니다. 고든 램지(Gordon James Ramsy Jr.)의 "거룩한 분노"(Holy Rage)가 모든 사람에게 통할 것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대강 넘어가지 않고 하나하나 지적해 가면서 근본원인을 도출하려 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논리적이고 강한 챌린지를 했고, 이로 인해 생기는 그들의 분노가 변화와 발전으로 승화될 것이라 믿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믿음대로 변화해 준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저는 한때 거룩한 분노를 통해 뭔가를 성취한 경험이 꽤 있었고, 그래서 남들도 저처럼 행동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싫은 소리, 비판의 소리를 들었을 때 거룩한 분노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저 화를 내고 반발할 뿐이었습니다.
그래도 변화하는 사람이 있긴 했습니다. 거룩한 분노를 느껴서 변화하는 사람도 있었고, 앞에서는 반발했지만 뒤에서 깨닫고 개선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람을 변화시키려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친구의 말대로 먼저 그들을 헤아리고, 그들의 마음을 얻고 등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그런데 개인적인 인간관계나 조직에서 이런 노력을 꼭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런 사람은 미리 포기하는 게 효율적이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더 좋습니다.
공자도 "유상지여하우불이"(唯上知與下愚不移)라 하여, "스스로를 가장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와 배움을 포기한 아둔한 사람들은 바꾸기가 어렵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수치심을 모르는 자 역시 아무리 말을 해도 알아듣지 못할 것이니 피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자들이 이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피해서는 안되고, 적극적인 선거참여 등을 통해 이들을 추방해야 합니다. 그런데 추방이 잘 안됩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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