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회사 셔틀버스를 이용해 출근하고 있는데요, 몇 번 타다 보니 버스 타는 요령이 생깁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게 버스 뒷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뒷자리가 앞자리보다 덜 복잡한데, 때론 혼자 앉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뒷자리에 앉으려 하는데요, 그러려면 남들보다 일찍 정류장에 나와야 합니다. 인생에서는 줄을 잘 서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앞 줄에 서는 게 핵심입니다.
오늘도 역시 앞 줄에 서기 위해 먹던 사과를 과감히 내려 놓고, 서둘러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일찍 도착하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갑니다. 정류장으로 가는 첫 번째 관문이자 핵심 장애물인 신호등이 때맞춰 녹색으로 변해 줍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이제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서 정류장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인 신호등이 해결되었고, 나머지는 제 두 다리가 알아서 하면 되니 거칠 게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그간 내내 멀쩡하던 에스컬레이터가 고장 났다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 옵니다. 이용을 못하게 막아 놨습니다. 이렇게 되면 지상으로 대로를 건너야 하는데, 촌각을 다투는 상황에서 신호 대기를 해야 합니다. 길 건너 바로 앞에 있는 정류장을 보니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다행히 길지 않습니다. 지금 건너면 안정권인데, 신호를 기다려야 하다니... 조바심이 났습니다.
위기상황이지만, 차분하게 대응합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지하도로 연결된 엘리베이터가 있습니다. 이걸 타는 게 더 빠를 것 같아 일단 탔습니다. 그리고 닫힘 버튼을 눌렀는데 안 닫힙니다. 이건 일정 시간이 지나야 자동으로 닫히는 거랍니다. 아, 가지가지합니다^^. 신호등이 바뀔 때가 된 듯하여 얼른 내렸습니다. 빠른 판단력! 바로 신호등이 바뀌었고 뛰어갔습니다.
결론은? 그 짧은 시간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네요. 저는 꽤 뒤로 밀렸습니다. 안정권에서 멀어졌습니다. 뒷자리에 앉을 확률이 제로에 가깝습니다. 허탈한 마음에 이번 일을 갖고 친구들과 카톡을 했습니다. 그런데 역시 사람들 생각은 다 다릅니다. 백인백색(百人百色)!
저 : 역시 인생은 운칠기삼이다. 오늘은 이전보다 더 일찍 나왔는데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 때문에 이렇게 되다니...
친구 : 운이 아닐 수도 있어. 돌발변수를 감안해서 좀 더 일찍 나왔어야 하는 건 아니었을까?
저 : 이전보다 계속 시간을 앞당겨 일찍 나오고 있는데, 얼마나 더 일찍 나오라는... 이러다 쓰러질 듯^^
그래도 나름 노력을 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아 위안을 받을까 했는데 챌린지를 받게 되니 다소 우울해졌습니다. 이 작은 일을 확대해 보면, 결국 우리 사회의 모습이 나옵니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앞서 가기 위해 무한경쟁을 해야 하는 사회, 사람들을 계속해서 그 상황으로 내몰고 뒤쳐지면 낙오자 취급하는 사회.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 뛰어야 하는 건지.... 지치면 걷기도 하고, 걸으면서 숨을 돌려야 더 오래갈 수 있는 것 같은데...
오늘 뒷줄에 서게 되었고, 위로도 못 받았지만 다행히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대여, 걱정하지 말아요. 이게 끝이 아니야. 좌절하지 말자. 뒷 줄에 섰을 때도 좋은 자리를 차지했던 적이 있었잖아!"
버스가 도착했고, 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저를 위한 빈 자리가 있었습니다! 웃고 울다 웃은 아침의 일을 생각해 보니, 이런저런 고사성어가 떠오릅니다. 아침 식사도 포기하며 고생한 만큼 결과가 좋았으니 고진감래(苦盡甘來)요, 중간에 이슈는 있었지만 그래도 노력한 사람이 좋은 자리에 앉았으니 사필귀정(事必歸正)이요, 에스컬레이터 고장이라는 불행이 결국 복이 되었으니 전화위복(轉禍爲福)이요, 인생은 어찌 될지 모르는 무상한 것이니 새옹지마(塞翁之馬)라....
나이를 먹어 갈수록 인생은 새옹지마라 느껴집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인생!
그러니 일희(一喜)는 하더라도 일비(一悲)하며 좌절하지 말지어다.
결과는 통제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니,
그저 과정에 충실하고 만족할뿐...
물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부당한 수단을 동원하고, 과정을 엉망으로 만드는 자들이 활개치는 게 작금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인생도 결국은 새옹지마입니다. 설령 이승에서는 즐거움만 누리며 살지 몰라도 새옹지마는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저승에서 엄청난 슬픔을 겪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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