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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생각

고분고분하게 살라고? 신나게 귀거래사나 읊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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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아시안 컵 축구대회를 깨끗하게 망쳐 놓은 클린스망(亡) 감독의 후임에 관한 기사를 읽다 "고분고분"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박항서 감독은 정몽준 씨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아 국대 감독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인데요, 언론 보도 가운데 Fact가 아닌 게 많으므로 정몽준 씨가 여전히 배후에서 국대 감독 선임을 좌지우지하고 있는지, 그간 박감독이 고분고분하지 않아 불이익을 받아 왔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력이 아닌 '고분고분 여부에 따라 국대 감독이 결정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개탄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지금까지 축협이 해 온 걸 보면, 그럴 개연성이 높아 보이기도 합니다. 
 
대체 고분고분이 뭐 길래, 국대 감독을 뽑는 일에까지 언급이 되어야 할까요?
고분고분이라.....좋게 이야기하면 말 잘 듣고, 성실하고 와 같은 이미지가 떠오르고, 나쁘게 이야기하면 비굴 뭐 이런 게 떠오릅니다.

역지사지 관점에서 보면, 상하관계 등을 다 떠나서 친구든 누구든 상대방이 고분고분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말에 자꾸 토를 달고, 아니라고 이야기하면 그 친구는 바로 손절 대상입니다.

조직에서는 리더가 A라는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데, 자꾸 B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철학이 안 맞는 사람, 반골, 좌파, 부정적인 사람 등으로 찍히는 게 일반적입니다.

왕조 시대를 보면, 간신은 보약을 받았고, 충신은 사약을 받았습니다. 충신은 후세에 이름을 남길 수는 있었으나,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습니다. 사실 충신의 말이 다 맞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나, 조직에서 한 자리 차지하기 위해서나 고분고분하게 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분고분하기 어려운 경우들이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 고분고분해서는 안될 상황이나 조직에 처해 있을 때 등 말입니다

어찌해야 할까요? 생존을 위해서는 우선은 고분고분해야 합니다. 당 태종이 직언을 서슴지 말라 명했던 위징(魏徵)조차 직언을 간하다 당 태종의 분노를 사 죽을 뻔한 경우가 많았다 합니다. 내가 위징처럼 간이 큰 사람도 아니고, 내 상사가 당 태종 같은 리더가 아니라면, 고분고분해야 합니다.

고분고분해도 자기편이 아니면 내치는 옹졸한 리더가 많은데, 고분고분하지 않다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그런데 고분고분해 가며 생존하는 게 비굴하다 생각되면 어찌해야 할까요? 절이 싫으면 떠나야 합니다. 그 절을 바꾸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먹고살아야 하니 떠나기도 쉽지 않습니다. 딜레마 상황이죠.
 

떠날 때 떠나더라도 우선은 태도와 방식을 고분고분하게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용은 고분고분하지 않더라도, 그 표현 방식은 고분고분하게 해 보는 겁니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Tone and Manner가 중요한데, 내용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사람들은 대개 그 표현방식도 고분고분하지 못합니다. 직설적이고, 투박합니다.

이럴 경우, 그 내용이 아무리 타당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짜증 내고, 직설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부드럽게, 공개석상에서 비판하기보다는 1:1로 건의한다든가 하면서 Tone and Manner를 세련되게 해 보는 거죠.

무엇보다 내가 사심 없이 충심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느끼게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쓴소리는 듣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라 여전히 위험하긴 합니다^^
 

이렇게 해서도 안된다면 도연명처럼 귀거래사를 읊조리며 신나게 떠나거나, 조용히 지내야 하겠죠....

조직이 건전하게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반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리더는 거의 없습니다. 정치든 뭐든 결국 유유상종이고, 내 편 챙기기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 조직이 금방 망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휘어진 대나무. 생존이 우선입니다. 잠시 휘어진 후, 다시 곧게 뻗어 갑니다. 대나무의 미덕은 곧기만 한 게 아니라, 잠시 타협하지만 그 본성을 잃지 않고 다시 곧게 자라는 회복 탄력성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 시름 잊고 도연명(陶渊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나 감상해 보시죠.

오두미(五斗米, 월급)와 알량한 관직을 과감하게 던져 버리고 지었다는 귀거래사, 통쾌함이 느껴지긴 합니다^^  

歸去來兮(귀거래혜) 자, 돌아가자.
고향 전원이 황폐해지려 하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
지금까지 고귀한 정신을 육신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어찌 슬퍼하고 서러워만 할 것인가.

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없음을 깨달았다. 이젠 바른 길을 좇는 것이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맨 것은 사실이나, 아직은 그리 멀지 않았다.
이제는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의 벼슬살이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알았다.

배는 흔들흔들 가볍게 흔들리고
바람은 한들한들 옷깃을 스쳐가네.
길손에게 고향이 예서 얼마나 머냐 물어보며,
새벽빛이 희미한 것을 한스러워한다.

마침내 저 멀리 우리 집 대문과 처마가 보이자
기쁜 마음에 급히 뛰어갔다.
머슴 아이 길에 나와 나를 반기고
어린것들이 대문에서 손 흔들어 나를 맞는다.

뜰 안의 세 갈래 작은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지만,
소나무와 국화는 아직도 꿋꿋하다.
어린놈 손 잡고 방에 들어오니,
언제 빚었는지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
술단지 끌어당겨 스스로 잔에 따라 마시며,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남쪽 창가에 기대어 마냥 의기양양해하니,
무릎하나 들일 만한 집이지만 이 얼마나 편한가.

날마다 동산을 거닐며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본다.
문이야 달아 놓았지만 찾아오는 이 없어 항상 닫혀 있다.
지팡이에 의지하며 발길 가는 대로 쉬다가,
때때로 머리 들어 먼 하늘을 바라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골짜기를 돌아 나오고,
날기에 지친 새들은 둥지로 돌아올 줄 안다.
저녁빛이 어두워지며 서산에 해가 지려 하는데,
나는 외로운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서성이고 있다.
 
돌아왔노라.
세상과 사귀지 않고 속세와 단절되리라.
세상과 나는 서로 인연을 끊었으니,
다시 벼슬길에 올라 무엇을 구할 것이 있겠는가?

친척들과 정담을 나누며 즐거워하고,
거문고를 타고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래련다.
농부가 내게 찾아와 봄이 왔다고 일러 주니,
앞으로는 서쪽 밭에 나가 밭을 갈련다.

혹은 장식한 수레를 부르고,
혹은 한 척의 배를 저어
깊은 골짜기의 시냇물을 찾아가고
험한 산을 넘어 언덕을 지나가리라.

나무들은 즐거운 듯 생기 있게 자라고,
샘물은 졸졸 솟아 흐른다.
만물이 때를 얻어 즐거워하는 것을 부러워하며,
나의 생이 머지않았음을 느낀다.

아, 이제 모든 것이 끝이로다!
이 몸이 세상에 남아 있을 날이 그 얼마이리.
어찌 마음을 대자연의 섭리에 맡기지 않으며.
이제 새삼 초조하고 황망스런 마음으로 무엇을 욕심낼 것인가?

돈도 지위도 바라지 않고,
죽어 신선이 사는 나라에 태어날 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좋은 때라 생각되면 혼자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 세워 놓고 김을 매기도 한다.

동쪽 언덕에 올라 조용히 읊조리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는다.
자연에 따라 죽음으로 돌아가니,
천명을 따르고 즐길 뿐 무엇을 의심하고 주저하랴.

 

챗GPT가 그린 귀거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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